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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이야기

[예술] 빈센트 반 고흐의 일생 Vicent Van Gogh

승해tmdhey 2021. 12. 23.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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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어디서든 인기가 많죠

저도 일생이 스펙타클해서 그 그림 하나하나를 보면 그 때 고흐가 뭐 했는 지 기억할 수 있고 ,,, 참 재밌어

 

그리고 고흐 그림을 직접 본 적이 있는데 (진짜 고흐가 그린 건 아니고 똑같이 만들어놓은 거) 고흐가 유화로 그림을 그리잖음. 근데 유화로 그린 '별이 빛나는 밤에'는 진짜 살아 움직이는 것 같고 넘 아름답더라고..그 시절에 그 그림을 그리고 있던 고흐를 상상하면 그 장면이 너무 아름다운거임

유화는 ↓이런 질감의 그림

그래서 저는 이 시점으로부터 유화를 좋아하게됐어요~ 원래는 그냥 그랬는데 고흐때문에 유화가 너무 아름답다는 걸 실감해가지고.... ㅋㅎㅎ

고흐는 원래 화가를 꿈꾸지 않았다.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어.

고흐에게는 5명의 동생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테오' 와 가장 가깝고 친하게 지냈었음(아주 중요). 그리고 고흐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그리는 걸 좋아했대ㅋㅋ

15살에 가난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되고 , 집을 떠나 일을 하기로 결심하게됨. 그러고는 헤이그에서 그림을 파는 일을 했었어. 성실하고 착해서 고객들한테 많은 사랑을 받았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쓰곤했는데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끈끈한 관계를 이어나갔다고 함

암튼 능력을 인정받고 런던으로 떠나게되고 한 여자(하숙집의 딸)에게 처음으로 사랑에 빠짐(1881년). 그리고 고백했다가 차임

여자: 나 이미 약혼자 있는데..?

이렇게 첫사랑에 실패한 빈센트는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일도 제대로 안해가지고 런던 일하던 곳에서 쫒겨남....

그러고는 파리로감. (나였으면 런던에서 쫒겨나고 그냥 이런저런 일이나 하고 살아야지 하고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갔을거같은데... 파리로감 진짜 이런 인생 배워야함 )

파리로 가서는 마음의 아픔을 떨치기 위해 종교(기독교. 아버지가 목사였음)에 의지함

그러던 어느날 화랑에서 팔 물건을 찾으려고 밀레의 전시회에 갔다가 밀레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음 (참고: 밀레는 '이삭 줍는 여인들' 그린 화가)

이삭을 줍는 여인들 - 밀레

밀레의 그림(사실주의)을 본 후 고흐는 그림파는 일을 하면서 사실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랑 다툼을 하곤 함. 참 피곤하게 살음.. 사실주의 반대자들이 심하게 말하는 것도 있었음

사실주의 반대자들: 농부가 농사짓는 건 농부들 집에나 어울리지 나같은 저택에는 안어울려~ㅋ

고흐: 그림 사는사람이 그런 이상한 사상을 가졌으니 이상한 그림들이 나오는거야 ;

이러다가 화랑에서 쫒겨남ㅠ 그래서 집에 돌아갔어..

그러고는 아빠따라 목사된다함. 근데 목사가 그냥되진 않죠? 공부를 해야함 . 그래서 친척들 도움으로 유명한 선생님 붙여서 공부도 했지만 일년이 지나도 실력이 도통 늘지를 않음...신학대학에서도 낙방 ㅠ 애초에 빈센트는 공부에 머리가 없었던거임~ 그래서 목사는 안되겠다 싶어 전도사가 되기로 마음먹음

전도하기위해 북유럽 젤 가난한 동네중 하나인 탄광촌으로 가서 광부들에게 전도를 시작함 . 그와중에도 테오에게 그림과 함께 편지를 써서 보내곤 함. 정말 우애가 깊음

그러던와중 갑자기 전도사 관리자라는 사람이 나타나서는 "전도사라는 사람이 꼴이 그게 뭡니까! 그러고 다니면 사람들이 기독교를 뭘로보겠소? 당신은 해고야" 이럼 그래서 또 이렇게 하나의 꿈이 날아감

'나 이제 뭐하고 살지...' 하고있던 빈센트에게 동생 테오가 "그림 제대로 시작해봐" 한거임

그림을 그리기로 선택한 후의 삶

테오의 제안에 ㅇㅋ하고 화가의 인생을 걷게됨.

하지만 다짜고짜 나 화가할래!해서 화가가 탄생하지는 않잖아요? 고흐는 화가인 친척을 찾아가서 도와달라해서 열시미 그림그리는 연습을 함.

그러던 어느날 누군가가 빈센트한테 12개의 그림을 그려달라고 사겠다함. 기뻐서 친척화가한테 말했더니 친척화가가 자만하지말라고 그 그림을 산 건 예의의 표시라며 넌 아직 더 노력해야해 라고 함.

빈센트,,, 완전 삐짐.. 빈센트 성격이 충고나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았어.,

그 외에도 빈센트 그림에 충고만 했다 하면 화내서 화가친척이 화가는 비판을 받아들일줄 도 알아야한다한다고 했는데 화나서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버림ㅋㅋ

그러고 집에갔는데 그때당시가 30대였음. 30대가 되어서도 집에 짐만된다고 생각한 고흐는 아침일찍 나가 그림만 그리다가 밤 늦게 들어옴.

가난하고 고된 생활하는 사람들 곁에서 그림그리며 마음을 나누곤 했음. 그 때 가난한 농부가족의 식사시간을 그린 '감자먹는 사람들'이 이 때의 그림임

감자 먹는 사람들

 

(참고로 '감자먹는 사람들'은 사실주의적으로 그린 그림인데, 사실주의적이지 않기는 함. 사실주의는 뭔가 진짜 사람이랑 똑같아보여야하는데 이 그림은 특정 부분이 부각되어보이기도 하고 암튼 그럼. )

이 그림을 화가인 친구에게 보냈는데

친구: 앉아있는 자세가 너무 불안정하고 손이 너무 커.

라고 답장이옴. (다시한번 말하지만 고흐는 비판을 못받아들임)

고흐는 농부의 고된 일상을 강조하기 위해 손을 일부러 크고 투박한 게 그린 것인데 왜 사람들은 아무도 내 그림을 몰라보는거야??????이러고 화내며 좌절에 빠짐 (상처를 잘받는 편)

(tmi 고흐는 자존감이 낮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것 같아. 특히나 죽은 형의 이름이랑 똑같이 지었다는 것 듣고 충격받음... 나라도 그렇게....대우를 받으며 살았다면 너무 슬펐을거같음ㅠ)

이 때쯤에(1882년) 시엔이라는 창녀를 만나게됨. 이 여자는 5살짜리 애도 있고 임신도 했고 집도 없었는데 살아남기 위해 몸을 팔아야했음. 그래서 빈센트가 숙식 해결해줄테니 모델이 되어달라함. 그렇게 같이 살게됨. 심지어 한동안 시엔 어머니까지 데리고 살기도 했대

이건 시엔을 그린 그림이고 사진 제목이 Sorrow(슬픔)이야 빈센트가 보기에 시엔은 항상 슬퍼 보였나봐

시엔이랑 그 아들

시엔이 애 낳았을 때나 아플 때 열심히 간호해주고, 자기 아들은 아니지만 시엔이 애 낳았을 때 자기 애처럼 이뻐해주고 그랬대

근데 고흐한테 돈을 지원해주던 사람이 동생 테오였는데 아버지뿐아니라 자신이 의지하는 테오조차 그녀와 헤어지기를 강요했음..ㅠ 그래서 고흐는 그녀와 헤어지는 것이 괴로울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생활비를 줄이고 그림에 전념하기 위해 시엔과 어린아이랑 작별하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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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까지만 해도 고흐는 밀레의 사실주의 그림에 충격을 받고, 사실주의적인 그림을 계속 그려왔음. 비록 사실주의적으로 그렸음에도 사실주의적이지 않았기는 했지만..?

암튼 고흐가 동생 테오한테 왜 자신의 그림은 팔리지 않는지 한탄했었는데 그 때 그림을 파는 일을 했던 테오가 사실주의는 이미 유행지난 그림이라고 말했어. 그 후부터 고흐는 색채에 대해 연구해보기 시작했고, 이 시점으로부터 조금씩 색채가 들어가는 그림을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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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그림을 좀 더 배우기 위해 독일 벨기에로 가서 예술학원을 등록함. 하지만 그런 아카데미 미술은 빈센트한테 넘 안맞았어,,그래서 그만 두게 되었음.

그러던 어느날 지나가다가 일본그림을 보고 꽂히게됨. 생동감있는 인물 표정, 화려한 색감, 단순과감하게 표현하는 방식으로 그린 일본화를 보며 감탄함. 그러고 자신의 그림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하게 됨 (특징을 살려서 그 점을 부각하는 점에서 이렇게 생각한 것 같음)

그러고는 자신과 맞지 않는 화풍을 배워봤자 필요없다고 느끼고 동생 테오가 있는 파리로 감.

그림 파는 일을 하고 있던 테오는 빈센트를 인상주의 화가 모임에 참석하게 도와줬어

이 모임의 인상주의 화가들은 안팔리는 그림, 유행하지 않는 그림을 그려서 가난했음.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반고흐가 원하던 모임 아니겠냐며.... 그렇게 거기서 고갱이라는 화가와 친해지게됨

( 아까 말했듯이 색채 연구를 했던 때를 기점으로 고흐의 그림에 색채가 들어가기 시작했었는데 이 때 고갱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면서 고갱이 색채를 더 쓰라고 권고하기도 함. )

 

고갱의 자화상

하지만 반고흐는 화가모임을 줄이기로 마음먹음. 왜냐면 자기는 그냥 그림 그리는 게 좋은건데 사람들은 자꾸 이론을 얘기하니까 '그림은 그림이지 이론을 왜 토론해야한담?'생각한거야.

그렇게 어느순간부터 방 안에서 그림만 그리기 시작함

이 때 고흐는 특히 자화상을 많이 그렸는데 규칙이나 기법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겉모습,마음의 변화까지 자화상에 표현해냄

고흐 그림의 주제는 점점 ' 사람들의 생활에서 아름다운 자연과 빛을 표현하는 것'이 되어갔는데 , 그걸 그리기엔 도시인 파리가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다른 곳을 찾기로함. (생각만함)

생각만하다가.. 도시생활이 맞지 않았던 고흐는 병에 걸림••• 그래서 '아를'이라는 곳으로 가야겠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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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2년간의 그림 전성기

아를은 자연이 살아있었음 아를은 정말 고흐가 생각했던 그대로였고 고흐는 넘넘 행복했어

(이러한 아름다운 풍경을 매일매일 그리기 위해 이젤을 아예 땅에 박아놨다고 함)

{그리고 여기서 반고흐 특유의 화풍이 시작됐다고도 함. 아를로 간 후부터 죽을 때까지 약 2년 반이라는 기간이 빈센트 반고흐의 예술의 개화기}

고흐는 살면서 900여 점의 그림들과 1100여 점의 습작(연습삼아 그린 작품)들을 그렸는데, 그중에 대부분이 이 2년 반 안으로 그린거래.

날이 저물면 밤새 여는 카페에 가서 그림을 그리곤 했대 정말 화가의 삶에 몸을 묻었어. 이 카페는 (돈이없어서 방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밤에 많이 이용했는데 고흐는 이 곳이 그렇게 가난한 사람의 고단함이 베인 점울 좋아했음

밤의 카페와 밤의 카페 테라스

(tmi 이거 그리는 데 정말 심혈을 기울였대. 이 그림 구상하면서 그린 스케치들이 엄청 많았다고 함)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평생을 불안정하게 지냈던 고흐는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아를에 노란집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집에 정말 애정을 가졌음.

그 집이 아래의 <아를의 방>,빈센트의 방 임

고흐가 이 때 얼마나 행복했냐면, 나중에 병원에 가게되는데 노란 집에서 살 때의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하며 이 그림을 두 번 이나 복제했었음 (<-내가 가장 치이는 부분)

자신을 뒷바라지해 주는 동생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워하기도, 그리워 하기도 하면서 동생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수시로 편지를 보냈는데

-----편지내용중 일부-------

너에게 작업 방향을 조금이라도 알려주고 싶어서 작은 스케치를 동봉한다.

아직 눈은 좀 피곤하다. 그러나 오늘은 기분이 아주 좋은 날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그 구성을 스케치해 보았다. 늘 그렇듯 크기는 30호 캔버스다.

 이번에 그린 작품은 나의 방이다. 여기서만은 색채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것을 단순화하면서 방에 더 많은 스타일을 주었고, 전체적으로 휴식이나 수면의 인상을 주고 싶었다.

사실 이 그림을 어떻게 보는가는 마음 상태와 상상력에 달려 있다.

 벽은 창백한 보라색이고, 바닥에는 붉은 타일이 깔려 있다. 침대의 나무 부분과 의자는 신선한 버터 같은 노란색이고,

시트와 베개는 라임의 밝은 녹색, 담요는 진홍색이다.

창문은 녹색, 세면대는 오렌지색, 세숫대야는 파란색이다. 그리고 문은 라일락색.그게 전부다.

문이 닫힌 이 방에서는 다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가구를 그리는 선이 완강한 것은 침해받지 않는 휴식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벽에는 초상화와 거울, 수건, 약간의 옷이 걸려 있다. 그림 안에 흰색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테두리는 흰색이 좋겠지.

 이 그림은 내가 강제로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데 대한 일종의 복수로 그렸다.

그리고 이 그림 처음 그린 그림+ 두 번이나 복제했다했잖아

이게 처음그린거고

tmi 고흐가 노란색을 좋아했음 황금빛 밀밭,노란집, 햇살 등등

이게 두번째임

이 그림을 보면 방안의 물건들 중에서 혼자 살고 있는 방에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이 있음(ex.베게)

그리고 침대벽쪽에 붙은 초상화 두점 중에서 왼쪽은 자신을 그린 초상화이며 오른쪽에 있는 것은 동생 테오를 그린 초상화인데, 편안한 휴식을 취할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가장행복하게 해주는 물건들로 채우고 싶었기 때문일거래

동생테오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고흐를 이해 해 주는 특별한 동생이라 그림으로서 테오에게 그 마음을 전하려고 했던것 같음

그리고 고흐는 이 그림에서 침실을 단순하게 묘사하지 않고, 따뜻하고 밝은 색으로 고요함을 느끼고 싶은 자신의 바램과 휴식이라는 이미지를 표현하려 한 듯 해

고갱과의 60일

아를에서 이렇게 잘 살다보니 문득 혼자서 이런 좋은 것들을 보긴 아깝다고 생각이 들어서 동생 테오한테 '파리에 있는 친구들 아를로 초대해주라~ 여기 넘 좋아서 화가의 마을로 만들면 좋을거같아'라고 편지보냄

답장 from 동생테오

: 사람들한테 말해봤는데 가겠다는 사람이 많지가 않아. 그래도 고갱이 아를로 가겠대.

고갱이 아를로 간 이유는 이렇다고 볼 수 있음

고갱 자신이 그린 그림을 (고흐동생)테오가비싼 값에 구입했었어서 고갱이 이 형제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테오가 끈질기게 권유하니 갔던거임

그래도 어느정도 관심은 있으니 가지 않았을까..??암튼

고흐: 야호!

고흐가 고갱 진짜 마니 좋아했잖아요ㅠㅠㅠ

'너무좋다 고갱 빨리왔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하며 고갱을 기다리며 그림 그림이 바로 <해바라기>

글고 다들 알다시피 해바라기 그림이 엄청 많음,,, 올 때 까지 계속해서 그렸대ㅠ

동생 테오한테 보낸 편지중에 이런 말도 적혀있음 "해바라기는 빨리 시들기때문에 나는 매일 아침부터 황혼이 질 무렵까지 해바라기를 그린다" <-ㅠㅠ 여기서도 치임

아를에서 고갱과의 삶이 시작되었으나 성격차이가 심했음.....

(또 tmi지만 고갱이 처음 집에 도착했을 때 벽에 가득 걸려있던 고흐의 그림에 매료되었지만, 그것도 잠시 고흐의 엉망진창 방을 보고 경악함. 담배 냄새+ 제대로 씻지 않은 땀 냄새, 날씨는 더웠지만 마땅히 목욕을 할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었음 => 청결상태 bad,, 고흐가 동생 테오네 집에서 머무를 때도 테오가 고흐의 청결상태와 무절제하고 방탕한 삶을 진심 싫어했대)

고갱과 고흐는 예술에 관해 격렬하게 논쟁을 펼치곤 했음.

그도 그럴 것이 고갱이랑 고흐는 그림그리는 생각부터다 달랐음

고흐-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그림에 담는다

고갱- 실제+상상을 그림에 담는다

이런점에서 달랐는데

의견,그림차이로 싸운 것 중 하나가 이 그림임

이 그림은 같은시각, 같은 공간에서 그린 그림인데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그림

고갱이 그린 그림

고흐는 이 지누부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아까 말했던 그 밤의카페) 도움을 받이 받았었고 이 부인에게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음. 그래서 고흐는 그림에 책을 보는 지누부인을 그리며 존경심을 표현함

고갱은 그림 전면에서 지누부인을 크게 그렸으면서도 그림의 제목을 <밤의카페 아를>이라고 지어서 지누부인의 존재를 부정했음. 그리고 부인 앞에 싸구려 술을 두어 교활한 술집 주인이라는 이미지를 줌.

그리고 뒤에보면 턱수염있는 할아버지가 있는데 그 분은 고흐가 평소에 좋아했던 집배원임. 근데 고갱이 그 분을 창녀들과 술을 마시는 것 처럼 그려서 술주정꾼처럼 표현함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시간에 그렸는데 둘이 왜 싸웠는 지 이해가 가지 •••나였어도 고갱 싫었을거임. 근데 고흐는 고갱의 그런 점이 싫기는 했어도 고갱한테 엄청 의지를 하고 좋아했음

근데 고갱은 해바라기를 그리는 빈센트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해 그림

이 그림을 보면 ,거의 시들어가는 해바라기를 진지하게 보며 그리는 고흐를 표현하는데 붓은 엄청 얇고 얼굴은 마치 원숭이처럼 표현함

고갱은 해바라기에 집착하는 고흐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더러 고흐의 실력은 인정하지만 그림 실력은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함 (자기가 그린 그림은 사람들이 돈주고 사는데 너껀 아니잖아? 이런 생각함)

암튼 이 그림으로 둘은 엄청 크게 싸우게 되고 고흐은 고갱이 자신을 버릴 것 같은 공포를 느끼고 있던 와중 그렇게 싸우고 자신의 왼쪽귀를 잘라버림..그리고 그 왼쪽 귀를 창녀에게 전해줬다는데 왜인 지는 몰겠음 이 때 정신이 좀 이상했대.

고갱은 고흐의 성격이 괴팍해서 싫어했다고 해... 고갱의 말에 의하면 면도칼로 고갱을 협박한 적도 있었대. 고갱이 우정에서 우위를 가르려하고 자신이 거기서 위를 차지하려하는 모습이 싫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고갱한테 의지하는 자신이 싫었어서 더 괴팍하게 굴지 않았을까..?하는 개인적인 생각..

귀가 잘린 자신의 자화상

(참고로 사람들은 고흐가 귀를 통쨰로 자른 줄 아는데, 귓볼만 잘랐다함)

그런 고흐에게 싫증이 난 고갱은 아예 고흐를 떠나 파리로 가버리고, 마을주민들의 비난(저런 정신병자랑 같이 살 순 없어!!!하는 ..)으로 동생 테오의 제안을 통해 정신병원에 들어가게됨.

정신병원에서의 삶

그 정신병원은 한적한 시골(생레미)이라 그림을 그리기 좋은 공간이어서 테오가 열심히 알아본 끝에 여기가 좋겠다 싶어 고흐는 이 곳으로 들어가게됨

여기서 고흐는 매일 그림을 그리고 많은 작품들을 남겼는데 그 중 하나가 이 그림임.

별이 빛나는 밤에

그렇게 열심히 그림을 그리다가 동생 테오가 편지를 보내옴 '내가 형 작품 인상주의 화가들 작품들이랑 함께 전시했는데 형 작품에 대한 평이 잡지에 실렸어'.

또 그 후에 400프랑과 함께 '형 그림에 대한 평이 잡지에 실리면서 형 그림 한 점이 팔렸어' 라고 옴

고흐 완전 신남!!!

그 후에 한 전시회가 열렸는데 이 전시회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젊은 미술가들을 위한 행사였고 , 고흐의 그림 한 점도 같이 전시됨

그 그림을 보고 감명받은 의사이자 화가인 가셰박사가 고흐의 사정을 알고는 자신이 돌보겠다함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고흐

고흐는 가셰박사네 집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림. 가셰박사가 자신을 그러줄 수 있냐고 해서 마침 모델이 필요했다며 그려주기도 했음

데이지와 양귀비 꽃병

그리고 이건 가셰박사한테 진료비와 약값으로 대신 준 그림

(tmi 경매에서 한화670억 정도에 팔렸대)

빈센트는 거기서 머무는 동안 밤낮하지않고 열심히 그림을 그림 ,, 하지만 그림은 팔리지 않고 생활은 다시 힘들어짐ㅠㅠ 물론 가셰박사가 먹고 재워는 주겠지만 여러가지로 돈이 필요하잖음 ..

그래서 테오에게 돈을 보태달라는 편지를 쓰게됨ㅠㅠ

하지만•••테오에게 답장이 안오는거임,,,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ㅜㅠㅠ

그 때 알게된 소식 - 테오는 지금 프랑스를 떠나 네덜란드로 갔음. 고향으로 간다고 했음

그 이후로 고흐는 그림도 그리지 않고 무기력하게 지냈어.

'나는 동생 테오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인가봐. 그리고 테오에게 너무 미안해 지금까지 도움받은 것도 많고 ....난 지금까지 뭘한거지? 난 그림을 왜그릴까...' 하는 생각을 함

(내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빈센트 반 고흐는 넘..자존감이 낮았던 것 같아. 남의 비판이나 충고를 잘 받아들이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러면서도 항상 끝없이 남들과 자신을 비교했음 ,,ㅠ )

이런 생각을 하다가 아무래도 이 인생은 너무 힘들고 더 힘들어지기 전에 죽는 게 낫겠다 생각해서 오베르(가셰박사가 사는 동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밀밭에 가서 총으로 자신을 쏴서 치명상을 입었지만 바로 죽지 않고

이틀 뒤에 세상을 떠나게됨 ㅜㅠㅠㅠㅠㅠ그리고 테오는 그런 형을 자신이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죽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하다가 6개월 후에 세상을 떠나게됨 ...

빈센트 반 고흐는 정말 화가중에 가장 고된 삶을 산 것 같음..,,

빈센트 반 고흐는 과연 '자살'했을까?

'반 고흐는 자살이 아니다' 라는 주장이 적지않게 제기되고 있어.

이유1. 총으로 가슴을 쏘기는 어렵다. 자살이 목적이라면 총을 관자놀이에 대거나 입 안에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유2. 손에 총의 화약 흔적이 없었다. 당시 사용된 화약은 신체에 밀착시킨 상태에서 발사하면 그을림이나 화상을 입을 수 있는데 수사 기록에는 그러한 기록이 없었다.

 

그렇다면 타살인가?

: 오베르에서 놀던 고흐와 친분이 있던 소년 2명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가설이 있다. 사건 당일 고흐는 밀밭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불량 총을 가지고 놀던 소년이 우발적으로 쏜 총에 맞았다는 가설.

고흐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소년들의 미래를 생각해 자살을 가장하기로 하고 죽음을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사건 전날 고흐는 평소보다 많은 물감을 주문했다는 기록이 있다.


1. 빈센트 반 고흐는 어떻게 유명해진거임?

: 빈센트랑 동생 테오가 죽고난 후에, 테오 아내가 그 둘이 주고받은 편지를 들고가 책으로 만들어주기를 권유함.

그래서 책으로 만들어지고 그것 때문인 지 죽고 난 후에야 유명해지기 시작하며 처음으로 빈센트 반 고흐의 전시회가 열렸음(그림 71점이 전시됨)

그 후 점점 유명해지고 사람들이 이러한 비극 일생까지 알게되면서 더더욱 유명해졌다고 볼 수 있음.

내 생각엔 빈센트의 그림을 보면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알고, 테오와 나눴던 편지를 통해 그 때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으니까 더 가치가 있는 것 같아

(Ex. 그림 볼 때 이 때는 이런 일들이 있었지...이 때 이런 편지를 보냈던데 얼마나 아쉬웠을까?)

2. 그럼 빈센트 반 고흐는 살아있을 때 그림 몇 점을 판거야?

: 정식적으로 딱 한 장 팔았음. 아까 동생 테오한테 편지왔던 거 기억함? 그 때 그 한 장이 끝이야. 그 그림은 <아를의 붉은 포도밭>인데 동생 테오가 고흐의 친구인

외젠 보슈(화가, 시인)의 여동생에게 팔았음~!

아를의 붉은 포도밭

3. 빈센트는 왜 자기 자화상을 그렇게 많이 그렸대?

: 가난해서,,, 모델을 구하려면 모델료를 내야하는데 해줄 모델이 없어서 거울 보면서 자화상을 많이 그렸음..,,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으면 나를 모델로 삼아달라고 부탁하겠어,,

4. 동생 테오는 형을 왜 그렇게나 많이 지원해주고 도와준거야?

: 물론 형제이기 때문에 도와준 것도 있지만, 동생 테오는 빈센트의 천재적인 재능을 알았고 그 재능이 있는 한 그림을 무조건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기때문에 계속해서 지원을 해 준거임.

테오가 없었으면 아마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탄생하지 못했을거라서 난 정말 테오가 대단해...

내가 만약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언니가 있었다면 지원을 해주기는 했을지라도 저렇게 끝까지 안고 못갔을거같음. 테오가 돈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다른사람 그림 파는 일 하면서 벌어봤자 얼마나 벌겠음 ㅠㅠ 진짜 대단함.... 이건 테오가 빈센트를 정말 사랑했고 형의 재능을 알아봤으며 동시에 그 재능을 세상에 알리기에 필사적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함

아래 편지는 테오가 누이동생에게 보낸 편지중 일부

'나도 지금까지 형을 지원하는 일을

그만 둘까 생각했던 것이

한두번이 아니야

하지만 그는 예술가야

그것도 아주 드문 재능을 가진 예술가

그런 그를 모른척 한다는 것은

화상으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 돼

그러니까 나는 형을 계속 지원할꺼야

언젠가 형은 반드시 후세에 길이 남을 멋진 작품을 만들게 될테니까

그런 예술가를 지원하지 않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짓이야'

휴.. 사실 빈센트에 대해 알면 알수록 치이는 게 테오임....

예전에 이 전시회도 보러갔다 ! 

테오랑 고흐가 나눴던 편지도 봤다

끝~

 

 

2021.12.23 - [재밌는 이야기] - [철학] 서양철학자 순서별 정리 -고대철학

 

[철학] 서양철학자 순서별 정리 -고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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